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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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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한빛도서관 2010. 12. 21. 13:38

저자: 김을한

190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을사년에 태어났다 하여 이름을 을한(乙漢)으로 지었다. 병자호란 때의 충신 김상헌의 후손인 그는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정고보 2학년 때 3·1운동을 맞았다. 그 직후 도쿄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는 김기진 등과 함께 극단 토월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귀국한 직후인 1924년, 조선일보 한기악 편집국장의 발탁으로 신문기자가 되었다. 김을한은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였다. 사회부기자 김을한은 그 당시 발생했던 큰 사건들을 밑바닥에서부터 파헤쳐 일제의 악랄한 식민정책을 폭로함으로써 이름을 떨쳤다. 광주학생운동, 장진강 토지사건, 만주사변의 치열한 현장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생생한 실상을 보도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을한은 서울신문사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하게 되었고, 이때 영친왕을 처음 만났다. 이후 20여 년 동안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언론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인간 이은』『월남선생 일대기』『여기 참사람이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덕혜옹주의 유치원 동무였던 아내 민덕임을 먼저 보내고 못내 그리워하다 1992년 서울 반포에서 세상을 버리고 그 곁으로 갔다.

책소개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 페이지, 영친왕!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의 생애를 다룬 책『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영친왕을 통해 조선왕조의 몰락과 이를 둘러싼 현대사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를 당사자들의 육성으로 들려준다.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였던 저자 김을한은 1950년부터 영친왕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었고, 이후 영친왕이 서거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며 그에게 헌신했다. 이 책에서는 기자다운 엄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영친왕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을 담아 그의 생애를 서술하고 있다. 황태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영친왕의 안타까운 운명과 인간적인 면모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놓는다.

출판사서평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 페이지

광복절이 언제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100년 전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일이 8월 29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말 그대로 치욕스러운 날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기념한다는 것이 언감생심이었던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 그러나 승리와 영광의 역사만큼이나 패배와 아픔의 역사 또한 기록하고 반추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팔봉 김기진이 말했듯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 페이지’인 영친왕의 생애를 예사롭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영친왕이라는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본 왕조의 몰락과 왕실 사람들의 말로,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현대사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당사자들의 생생한 육성에 실어 들려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와 더불어, 황태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간 영친왕 이은 씨의 안타까운 운명과 인간적인 면모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영친왕뿐만 아니라 그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님 고종과 형님 순종은 물론이고 덕혜옹주, 명성황후, 윤대비 등 왕가의 여인들, 그리고 의친왕과 이우 공을 비롯한 왕손들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는 쓸쓸하지만 때로는 흐뭇한 왕실의 뒤안길을 보여준다. 영친왕의 황태자비로 간택되었다가 파혼 당함으로써 평생 처녀로 늙었던 민갑완 여사, 고종을 도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말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평소의 소원대로 한국 땅에 묻힌 헐버트 박사의 뒷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이토 히로부미와 맥아더 같은 역사적 인물들도 선연이든 악연이든 영친왕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오사카 역에서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를 만난 것도 영친왕의 비극적인 삶에 방점을 찍는 장면이었다.

격조의 왕자, 침묵의 왕자
영친왕은 기울어진 나라의 운명처럼 신산한 삶을 살았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가 되어 조선의 제 28대 왕통을 계승했지만, 형님이자 선왕인 순종이 승하했을 때는 이미 나라가 사라져 계승할 왕위도 없어진 뒤였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갔고 일본의 왕족과 정략결혼을 했으며 1963년에 귀국할 때까지 50여 년을 일본에 머물렀다. 해방되기 전에는 일제의 볼모로 묶여있었고, 해방되고 나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견제로 귀국할 수 없는 신세였다.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온화하고 성실한 영친왕은 황태자로서의 기품과 격조를 잃지 않았으며, 작은 일이라도 조국과 민중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늘 고심했다. 6·25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한 유엔군을 위해 『A First Book of Korean』이라는 한국어 교본을 저술한 일이나, 공부를 하려고 일본에 밀항한 청소년들을 구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쓴 일 등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영친왕의 담백한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제 3대 국회에서 ‘구황실 재산처리법’을 제정하여 고궁과 왕릉을 포함한 구황실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했다. 한국 정부는 심지어 도쿄에 있는 영친왕의 저택마저 (주일대표부 건물로 쓰기 위해) 국유라며 내놓으라고 우겼다.
뜻 있는 일본 변호사 한 사람이 막대한 구황실 재산의 계승자인 영친왕에게 소송을 권했다.

“전하, 한국 정부에서 전하의 재산을 다 빼앗고 생계비도 드리지 않는 것은 법률위반이므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꼭 이깁니다. 재판을 거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변호는 제가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영친왕은 잘라 말했다.
“선생의 호의는 고마우나 이것은 우리나라 내부의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나는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내 나라 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생각은 없소이다.” (p234)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의 후손들이 매국의 대가로 받은 땅을 자기 것이라고 우겨서 끝끝내 그것을 삼켜버리는 후안무치가 횡행하는 요즘, 염치란 무엇인지를 우아하게 가르쳐주는 본보기라 하겠다.

때가 오기까지는 모든 것을 꾹 참고 기다리라는 고종의 마지막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영친왕은 무척이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기쁠 때는 미소를 약간 짓고 슬플 때는 억지로 참고 있다가 아무도 없는 밤중에 이불 속에서 혼자 우는 것이 제 2의 천성이 되었다. 말년에는 실어증마저 겹쳤다. 그리운 조국에 돌아온 뒤 7년간 병상에 누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깊은 한을 품은 채 영면했다. 나라를 빼앗긴 죄과 때문에 역사와 백성 앞에서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왕가의 업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최후였다. 하나뿐인 여동생 덕혜옹주도 정신병에 걸려 말을 잃었으니 남매의 운명 또한 기구했다.

한은 끝이 없고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저자 김을한과 영친왕의 만남은 운명적이다. 김을한의 백부 김황진은 오랫동안 고종황제를 곁에서 보필한 시종이었고, 아내 민덕임은 명성황후의 친정인 여흥 민씨 가문의 여식으로서 덕혜옹주의 유치원 시절 동무였다. 저자 스스로는 신문사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하던 1950년부터 영친왕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영친왕이 서거할 때까지 어려운 처지의 영친왕에게 망국의 충신처럼 헌신했다.
김을한은 기자다운 엄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냉정한 사가(史家)의 눈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을 담아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가련한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그들이 선조의 땅에서 눈을 감고 뼈를 묻게 하겠다는 김을한의 뜨거운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 영친왕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다. 그가 쓴 서문의 제목이 ‘끝없는 한, 마르지 않는 눈물(無窮限 不盡淚)’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영친왕을 위해 곡하다
이 책의 원본인『인간 이은』의 제작에는 당대 최고의 고수들이 참여했다. 영친왕이 서거한 이듬해인 1971년 출간된 책의 장정(裝幀)은 운보 김기창이 그렸고 제자(題字)는 일중 김충현이 썼다. 작가 김팔봉과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이 추천사를 썼으며 월탄 박종화가 영친왕의 영전에 바치는 시 <영친왕을 위해 곡하다(哭 英親王)>를 헌정했다. 영친왕을 위해 울어줄 이 많던 시절이었다.

추천사
조선 500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는 영친왕이다. 영친왕 이은 씨의 파란만장하고 또 기구한 일생이야말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피를 뜨겁게 하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동명 김을한 씨의 『인간 이은』은 그 시대환경과 한일 두 나라의 인정·풍토 가운데서 영친왕의 인간상을 가장 정확하게 부각시킨 문장이다. 1950년 이후 영친왕을 가까이 모셔온 동명은 누구보다도 자연인 이은 씨를 잘 아는 사람이다. 영친왕 이은 씨의 일생을 우리 독자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망국 왕조의 역사를 회상시키는 기록을 남기는 일에 동명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_작가 김팔봉

영친왕은 한마디로 말해서 비극의 주인공이다. 좀 더 일찍이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한 나라의 군주가 되었을지도 모를 분이 시대를 잘못 만나서 망국의 통한을 품은 채 거의 일생을 볼모로 지낸 일을 생각하면 인간적인 동정을 금할 수 없다.
_전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

김을한 씨의 서술은 대체로 정확하며, 아주 어려운 시기에 왕전하의 잘못된 국적을 다시 고치고 가여운 덕혜옹주마저 본국으로 모셔오게 해준 그 노고를 고맙게 생각한다.
_영친왕비 방자 여사

김을한 씨는 다년간에 걸쳐 우리 가족 일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상세한 자료를 수집해왔다. 김을한 씨는 이 저작을 통해서 정확한 역사와 부친에 관한 일을 자세히 소개하고, 한일관계의 복잡함을 말하고 있다.
_영친왕의 아들 이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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